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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AI에게 코레일 좌석 예약을 맡기면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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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AI에게 코레일 열차 좌석을 확인해 달라고 맡겨 봤습니다. 빈자리가 있으면 결제는 하지 말고 자리만 잡아 두는 데까지가 부탁이었어요. 표를 여러 장 사거나 되팔려는 요청은 아니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평범한 브라우저로 들어가면 열리던 사이트가 AI가 움직이는 자동화 경로에서는 막히는 듯했어요.

처음에는 개발자 도구나 디버거 연결을 알아챈 게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다만 같은 조건으로 나란히 비교해 본 것은 아니라서 무엇 때문에 막혔는지는 모릅니다. 대신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제가 AI에게 허락한 일과 코레일이 접속자에게 허락한 일은 서로 다른 문제였습니다.

AI 비서의 좌석 확인 요청이 서비스의 접근 경계 앞에서 멈추는 상황을 그린 개념도입니다.
AI 비서의 좌석 확인 요청이 서비스의 접근 경계 앞에서 멈추는 상황을 그린 개념도입니다.

코레일의 매크로 차단은 2025년 7월부터 있었습니다.

제가 막힌 건 최근이지만, 코레일의 매크로 차단 자체는 새 정책이 아닙니다. 코레일은 2025년 10월 1일 보도자료에서 그해 7월 매크로 탐지 솔루션을 들여왔다고 밝혔어요. 접속 패턴과 구매 행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매크로로 의심되는 이용자는 로그인과 승차권 조회 단계부터 막는다는 설명입니다. 결제 전이라서, 혹은 조회만 했다고 해서 탐지 대상에서 빠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유도 적었습니다. 노쇼와 매크로 때문에 실제로 타려는 사람이 표를 구하지 못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에요.

2026년 1월 13일 자료도 2025년 7월 도입을 다시 확인하면서, 연속 조회 같은 반복 접속 패턴을 잡아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5일 고속철도 통합 운영 발표에는 AI를 활용한 새로운 유형의 대량 구매 의심 사례를 계속 감시한다는 대목이 들어 있어요. 여기서 AI는 대량 구매를 의심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입니다. 개인이 쓰는 AI 비서를 모두 막겠다는 선언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9월에는 코레일이 10월쯤 새 패치를 적용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패치가 실제로 배포됐는지, 10월 29일의 실패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요.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차단 제도가 아니라 이번 경험입니다.

2025년 7월 탐지 솔루션 도입, 2026년 8월 5일 AI 활용 대량 구매 감시 발표, 10월 29일 실패한 시도를 날짜순으로 놓은 표입니다. 시도의 실패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코레일 보도자료, 직접 겪은 일)
2025년 7월 탐지 솔루션 도입, 2026년 8월 5일 AI 활용 대량 구매 감시 발표, 10월 29일 실패한 시도를 날짜순으로 놓은 표입니다. 시도의 실패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코레일 보도자료, 직접 겪은 일)

사이트에는 의도가 아니라 요청이 보입니다.

AI에게 부탁할 때 머릿속에 있던 건 자리 하나만 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이트 쪽에서 보이는 건 그 마음이 아닙니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같은 화면을 얼마나 자주 다시 불렀는지, 조회 다음에 무엇을 했는지 같은 신호뿐이에요. 코레일이 밝힌 탐지 기준도 의도가 아니라 접속 패턴과 구매 행태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돕는 AI 비서와 표를 대량으로 쓸어 가는 매크로가 바깥에서는 비슷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이 직접 누르지 않고, 둘 다 자리가 날 때까지 다시 확인하려 합니다. 이번에 정말 같은 규칙에 걸렸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서비스가 둘을 가려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개인이 쓰는 스크립트를 전부 불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나칩니다. 이 글은 법적 판단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편한 도구가 표가 모자란 서비스에서는 다른 이용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영향을 판단할 권한은 서비스에 있다는 점을 짚으려는 것이에요.

사용자의 허락이 서비스의 허락은 아닙니다.

AI에게 일을 맡길 때는 허락이 세 겹으로 겹칩니다. 첫째는 사용자가 AI에게 준 허락입니다. 둘째는 서비스가 접속자에게 허용한 범위입니다. 셋째는 모자란 좌석을 나눌 때 다른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에요. 사용자가 동의했다는 건 이 가운데 첫째만 채운 것입니다.

맡기는 일의 종류에 따라서도 무게가 다릅니다.

  1. 조회는 정보를 보는 일이지만, 짧은 간격으로 되풀이하면 서버 부하를 늘리거나 남보다 먼저 빈자리를 아는 선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알림은 자리가 났다는 사실을 사람에게 알려 주는 데서 멈춥니다.
  3. 결제하지 않은 확보는 돈이 나가지 않아도 그동안 그 좌석을 다른 사람이 잡지 못하게 합니다.
  4. 결제는 돈과 취소 수수료가 걸린 일이라 사람이 직접 확인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번에 맡긴 일은 조회와 확보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번 시도가 누군가에게 실제로 피해를 줬다는 근거는 없고,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서비스 입장에서는 결제 전 단계부터 이미 관리해야 할 영역이라는 점은 코레일의 설명과 맞아떨어집니다.

필요한 건 우회가 아니라 위임 창구입니다.

탐지를 피해 가는 방법을 찾는 건 답이 아닙니다. 차단을 비켜 가는 자동화는 대량 구매 도구가 쓰는 길과 같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AI 비서가 늘어날수록 필요한 건 서비스가 직접 열어 주는 위임 창구입니다. 아래는 코레일이 지금 제공하거나 계획을 밝힌 기능이 아니라, 이 글에서 제안하는 설계입니다.

  1. 권한을 조회, 알림, 확보, 결제로 나누고 사용자가 AI에게 줄 범위를 고르게 합니다.
  2. AI가 반복해서 조회하는 대신 서비스가 관리하는 대기열과 빈자리 알림을 둡니다. 요청량 한도도 서비스가 정합니다.
  3. 좌석 확보나 결제처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단계에서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확인합니다.
  4. 막을 때는 이유를 알려 주고, 정상 이용자라면 이의를 제기할 길을 둡니다.

외부 경로라는 발상이 낯선 것도 아닙니다. 코레일은 2021년 2월 네이버와 카카오T 앱에서 KTX 승차권을 바로 예약할 수 있게 판매 접점을 넓힌 적이 있어요. 계약을 맺은 제휴 경로와 허락받지 않은 자동 접속은 다른 문제라는 걸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다만 이 발표가 지금 누구나 쓸 수 있는 예약 API나 개인 AI용 창구가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권한을 조회, 알림, 확보, 결제로 나누고 서비스가 요청량과 대기열을 관리하는 위임 흐름 제안입니다. 코레일의 현재 구조는 아니에요.
권한을 조회, 알림, 확보, 결제로 나누고 서비스가 요청량과 대기열을 관리하는 위임 흐름 제안입니다. 코레일의 현재 구조는 아니에요.

확인하지 못한 부분도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실패의 원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되풀이해 비교하지 않았고, 이번에 살펴본 자료로는 어떤 탐지 방식이 차단을 일으켰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어요. 9월에 보도된 10월 패치가 실제로 적용됐는지도 모릅니다. 코레일이 발표한 차단 건수는 공사 자체 집계라 몇 명을 막았는지, 암표를 얼마나 줄였는지로 바꿔 읽을 수 없습니다. 정상 이용자가 얼마나 잘못 걸리는지에 대한 수치도 이번에 살펴본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현행 약관과 제재 기준, 법적 판단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AI 비서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차표처럼 모자란 자원 앞에서는 내가 허락했다는 말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허락과 서비스의 규칙이 만나는 창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앞으로 예매 서비스의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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