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내놓은 자율주행 AI
송찬우 5분 분량

지난 11일 판교 42dot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회사) 본사에서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었습니다. Atria AI를 탑재한 차량이 서울 도심을 운전자 개입 없이 주행하는 영상을 처음 공개했고요. 유튜브에 올라온 지 며칠 만에 조회수가 꽤 나오고 있습니다.
영상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 종류인데요.
첫째는 경영진과 개발 리더가 직접 타고 판교에서 경부고속도로, 올림픽대로, 동작대교를 지나 숭례문과 광화문까지 가는 영상입니다.
둘째는 원테이크 주행 영상 세 편으로, 출근 시간 강남, 대형 차량 많은 잠실, 비 오는 판교를 각각 담았습니다. 재생 속도 외에는 편집을 안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셋째가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엣지 케이스 10가지를 모았는데, 갓길에 세워둔 차 피하기, 갑자기 끼어드는 차, 비보호 좌회전, 혼잡 구간 보행자 인식, 이면도로 마주 오는 차 같은 것들입니다. 시험용으로 만든 상황이 아니라 실제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죠.
그런데 진짜 얘기는 영상이 아니라 그 뒤에 있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내세운 핵심 개념이 ‘데이터 플라이휠’입니다. 차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AI를 학습시키고, 검증하고, 개선된 모델을 다시 차에 넣어 새 데이터를 얻는 선순환이요.
여기서 제가 예전에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학습할 데이터는 다 떨어졌을 텐데 AI는 왜 더 좋아질까”에서, 답이 새 데이터가 아니라 모델이 굴러다니며 배울 환경을 늘리는 것이라고 정리했었죠.
현대차 발표에 거의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자율주행 경쟁의 본질은 결국 학습 속도의 경쟁”이라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모으느냐보다, 그걸 얼마나 빨리 학습과 검증과 성능 개선으로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이라고요.
구체적인 방법도 공개했는데 이 부분이 재밌었습니다.
어려운 상황만 골라냅니다. 전체 주행 데이터에서 AI가 헤매는 장면을 자동으로 선별해 집중적으로 학습시킵니다. 데이터가 많다고 좋아지는 게 아니라 어려운 데이터를 찾아내야 좋아진다는 발상이죠.
위험한 상황은 가상으로 재현합니다. 실제 주행 데이터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다음, 도로에서 반복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을 가상에서 만들어 반복 평가합니다. 사고 날 뻔한 장면을 안전하게 백 번 돌려보는 셈입니다.
24시간 개발합니다. 한국과 미국 거점을 연결해서, 한쪽 업무시간이 끝나면 다른 쪽이 데이터 수집과 이슈 분석을 이어받습니다.
차가 스스로 기록합니다. 급가속이나 급제동, 불안정한 차간 거리처럼 시스템이 이상을 감지하거나 운전자가 자율주행을 해제하면 그 순간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남깁니다. 사람이 일일이 분류하지 않아도 배울 거리가 모이는 거죠.
현재 데이터 수집 전용 차량 40여 대를 주야간으로 돌리고 있고, 연말에는 국토부와 함께 광주에서 레벨 4 실증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VLA입니다.
예전에 중국 Qwen 팀의 자율주행 논문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시각 정보와 언어 추론, 차량 행동을 하나의 모델로 묶는 VLA 기술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어디쯤일까” 싶었는데, 마침 답이 나왔습니다.
42dot이 VLA 기반 차세대 자율주행 개발에 착수했다고 공식화했습니다. 기존 방식이 주행 입력을 바로 차량 행동으로 연결한다면, VLA는 거기에 언어로 상황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더합니다.
공개된 영상에 그게 나옵니다. 차가 차선을 변경하는 장면에서,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문장으로 화면에 띄웁니다.
Qwen 논문 소개할 때 제일 재밌었던 게 이 부분이었거든요. AI가 “여우가 나타나 감속하세요” 같은 판단 근거를 말로 내놓는 것. 같은 발상이 국내 회사에서도 나온 겁니다.
왜 굳이 언어를 끼워 넣느냐면, 주행 데이터만으로는 배우기 어려운 희귀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대규모 사전 학습으로 얻은 일반 상식을 끌어다 쓰는 거죠.
논리적인 ‘말’로 판단한다면, 이상하게 반응했을 때 왜 그렇게 대응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엔비디아 협업으로 2028년 상반기에 레벨 2+, 하반기에 레벨 2++를 양산차에 넣고, 자체 개발한 Atria AI 기반 레벨 2++는 2029년 하반기가 목표입니다.
참고로, 레벨 2+는 고속도로에서만 자율주행을 활성화 되는 것이고, 레벨2++는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도로 한정하여 자율주행을 활성화 해주는 방식입니다. 레벨 2++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점진적으로 활성화 구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검증된 외부 기술로 속도를 내면서 핵심은 내재화하는 투 트랙이고요. VLA는 지금 시뮬레이션 검증 단계고,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에 실차 테스트에 들어갑니다.
냉정하게 볼 지점도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건 전부 회사가 제공한 자료입니다. 원테이크라고 밝혔지만 어떤 주행을 고를지는 회사가 정했고, 독립적인 검증은 없습니다.
그리고 레벨 2++는 공식 등급이 아닙니다. 국제 기준에는 레벨 2 다음이 레벨 3인데, 그 사이를 표현하려고 업계가 쓰는 말이에요. 여전히 운전자가 책임지는 단계입니다.
양산 시점도 3년 뒤입니다. 그 사이 경쟁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도 국내 기업이 도심 주행 영상을 편집 없이 공개하고, VLA 개발을 공식화한 것은 분명한 진전으로 보입니다.
영상은 현대자동차그룹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편, 잠실편, 판교편이 각각 2~4분이라 부담 없고, 미디어데이 전체 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Hyundai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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