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안 하는 AI 모델, Jev 출시
송찬우 5분 분량
요즘 나오는 AI 소식은 대부분 비슷한 방향이었습니다. 더 똑똑하게, 더 길게 생각하게, 더 잘 대화하게요. GPT-6 Astra도 Fable 5.1도 그랬고요.
그런데 9월 15일, 정반대 물건이 나왔습니다. 아예 말을 안 하는 모델입니다.
이름은 Jev, 만든 곳은 TypeSafe AI라는 스타트업입니다. 2년간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 내놨고요. 창업자는 OpenAI에서 ChatGPT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자입니다.
무슨 뜻이냐면요.
우리가 아는 AI는 글자를 하나씩 이어 붙여 문장을 만듭니다. “파이썬은 누가 만들었나요?”라고 물으면 “파이썬은 네덜란드 출신의 프로그래머인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이 만들었습니다. — ”라고 한 글자씩 써 내려가죠.
Jev는 그걸 안 합니다. 선택지를 주면 고르고, 확률을 붙여 돌려줍니다. 그게 전부예요.
예를 들어 고객 문의가 들어왔을 때 “이건 환불 문의인가, 배송 문의인가, 불만 접수인가”를 물으면 “환불 문의, 확신도 0.91” 같은 값이 나옵니다. 문장이 아니라 값이요.

그리고 여러 질문을 한 번에 동시에 처리합니다. 순서대로 하나씩이 아니라요.
이름에 두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회사는 이 부류를 ‘시스템 1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따온 건데요. 사람 사고를 두 갈래로 나눈 개념입니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직관적인 판단, 시스템 2는 느리고 신중한 추론이죠. 지금까지 AI 경쟁이 시스템 2 쪽이었다면, 이건 반대편을 노린 겁니다.

모델 이름 Jev는 경제학자 제번스에서 왔습니다. ‘제번스 역설’로 유명한 사람인데요. 효율이 좋아지면 오히려 총소비가 늘어난다는 얘기예요. 석탄을 아끼는 기관이 나오자 석탄을 더 많이 쓰게 됐다는 관찰에서 나왔고요.
이름에 회사의 의도가 있습니다. 판단 하나가 충분히 싸지면, 사람들이 판단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될 거라는 것.
숫자가 그걸 뒷받침합니다.
비슷한 작업에서 40~200배 빠르고, 입력 100만 토큰당 0.042달러입니다. 출력은 무료고요. 회사가 든 비교로는 Claude Fable 5.1의 기본 입력 요금이 100만 토큰당 10달러니까, 238분의 1 수준입니다.

발표 시연으로 둠(Doom) 게임을 플레이하는 걸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빠른 판단을 연속으로 내려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제일 화제가 된 주장이 이겁니다.
“수학적으로 환각이 불가능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짚고 가야 합니다. 오해하기 딱 좋은 문장이거든요.
Jev는 글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없는 판례를 지어내거나, 존재하지 않는 함수 이름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형식이 깨질 일도 없고요. 애초에 여러분이 준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틀린 선택지를 고를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 있게요.
즉 “형식이 틀릴 수 없다”는 뜻이지 “판단이 맞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분을 놓치면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어디에 쓰라는 걸까요.
회사가 든 예가 이렇습니다. 들어온 요청을 분류하기, 데이터에 점수 매기기, 그리고 다른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사하기요.
마지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에 AI가 쓴 코드를 어떻게 검토할지 정리하면서 “사람 눈보다 확실한 건 기계다, 못 속이는 관문을 두라”고 썼는데요. 그 관문을 아주 싸게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인 셈입니다.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검사하고, AI가 뭔가 만들 때마다 확인하는 게 가격 때문에 불가능했다면, 238분의 1이 되면 얘기가 달라지니까요.
확신도를 쓰는 방법도 제안합니다. 확신이 높으면 자동 처리, 애매하면 확인 요청, 불확실하면 사람에게 넘기는 식으로요.
다만 공개 안 된 게 많습니다.
학습 방법을 RLCD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무엇을 하려는 건지만 설명했을 뿐 평가할 만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보상 함수도, 구조도, 학습 절차도, 확신도를 어떻게 계산하는지도 안 밝혔습니다.
확신도 숫자 자체도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 확률 분포가 한쪽에 몰려 있으면 확신이 높다고 보는 방식인데, 몰려 있다는 것만으로 그 판단이 믿을 만하다는 근거는 안 됩니다. 내 데이터에서 실제로 얼마나 맞는지는 직접 재봐야 하죠.
그리고 어떤 개발자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사실 구조화된 출력을 쓰는 평범한 LLM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인터페이스가 아주 좋다.” 기술이 새롭다기보다 쓰기 편하게 만든 것이라는 시각이고요.
부하가 걸렸을 때 속도가 유지되는지, 지금 가격이 계속 갈지도 아직 모릅니다. 지금은 사전 체험 단계고요.
그래도 방향은 흥미롭습니다.
다들 더 똑똑하고 더 말 잘하는 AI를 만드는 동안, 사람이 안 읽을 판단을 대신 내려주는 모델을 따로 만들겠다는 거니까요. AI가 사람과 대화하는 도구에서 소프트웨어 안에 박히는 부품으로 옮겨가는 흐름 같기도 하고요.
제번스 역설이 맞다면, 싸진 만큼 우리가 AI에게 물어보는 횟수가 훨씬 늘어날 겁니다. 그게 좋은 일일지는 또 다른 얘기고요.
#AI #Jev #TypeSafe #LLM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