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AI 로펌, Astra for Law 출시
송찬우 6분 분량

지난 17일, OpenAI가 Astra for Law를 내놨습니다. 법률 업무에 특화된 버전인데요.
먼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새 모델이 아닙니다. 이달 초 나온 GPT-6 Astra를 법률용으로 설정한 겁니다. 모델 가중치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럼 뭘 더했냐면 세 가지입니다.
1) 법률 검색 인덱스를 붙였습니다. 미국 판례(법원이 실제로 내린 판결문), 법령, 규정, 법원 규칙, 행정 결정을 아우르는 2억 3천만 개 이상의 URL이고, 매일 새 자료가 추가됩니다. CourtListener(미국 법원 판결문을 무료로 모아 공개하는 비영리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단체와 협력해서, 미국에서 공표된 선례 판례(나중 재판에서 기준으로 인용되는 판결)의 99.9% 이상을 넣었다고 합니다.
2) 작업 지침을 심었습니다. 답변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할지 같은 설정값들이요.
3) 업계 도구를 연결했습니다. 26개 플러그인이 붙었는데, 크게 세 종류입니다.
기존 법률 인프라가 있습니다. 톰슨로이터(미국 변호사들이 판례 찾을 때 쓰는 대표적인 유료 데이터베이스 Westlaw의 운영사), Relativity(소송에서 수십만 건 문서를 뒤져 증거를 찾는 플랫폼), Clio(중소 로펌이 사건과 고객, 청구를 관리하는 업무 소프트웨어)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이 목록이 좀 묘합니다.
Harvey와 Legora는 OpenAI나 Anthropic의 모델 위에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남의 모델을 빌려 법률용으로 다듬어 파는 구조죠. 이번에 OpenAI 플러그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는데, 동시에 그 OpenAI가 법률 시장에 직접 들어온 셈이기도 합니다.
앞서 Anthropic이 법률용 서비스를 냈을 때 상장된 법률 소프트웨어 회사들 주가가 떨어진 일도 있었고요. 파트너이면서 경쟁자인 관계입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게 어떻게 생겼는지 감이 옵니다.
화면 아래에 ‘Innovation, Inc.’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사건이나 거래 건별로 작업 공간이 나뉘고, 그 안에 파일과 플러그인이 묶이는 구조예요. 모델 선택 칸에는 ‘GPT-6 Astra Law Ultra’라고 떠 있고요.

시키는 내용이 구체적입니다. “연결된 자료실과 회사 팩트시트를 써서 Innovation, Inc.의 S-1 조항 매핑 초안을 잡아줘. 완성에 필요한 질문이 있으면 대화창에서 물어봐.”
S-1은 미국에서 주식을 상장할 때 증권거래위원회에 내는 신청서입니다. 회사 사업, 재무, 위험 요인을 전부 적어야 해서 분량도 크고 틀리면 큰일 나는 문서예요. 조항 매핑은 그 신청서에 들어가야 할 항목들을 회사 자료와 하나씩 짝지어 정리하는 작업이고요. 로펌에서 제일 무거운 축에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34초, 43초 걸렸다는 표시가 뜨고 결과물이 워드 파일로 나옵니다. 요약을 보면 1차 공모 여부, 신흥성장기업 지위, 이사회 구성, 재무제표 연도까지 항목별로 정리돼 있고요.
제일 눈에 띈 건 중간에 끼어 있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이 매핑을 완성하는 데 추가로 확인할 쟁점은 없습니다. 매핑을 승인해주시거나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셔야 S-1 초안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다 만들어놓고 멈춰서 사람 승인을 기다립니다. 제품 안에 기본으로 들어가 있는 셈이죠. 틀리면 책임이 무거운 분야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커뮤니티가 만든 스킬 이름들도 화면에 나옵니다. 증언 준비(재판 전 증인 신문 대비), NDA 검토(비밀유지계약서 점검), 계약서 수정, 선례 검색(비슷한 과거 판결 찾기), 규제 공백 분석, 실사 검토(인수합병 전 상대 회사 뒤져보기), 이사회 의사록, 클로징 체크리스트(거래 마무리 전 확인 목록) 같은 것들이요. 로펌 주니어가 실제로 하는 일 목록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좋아졌을까요.
미국 법률 연구 질문 200개로 시험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웹 검색만 쓴 GPT-6 Astra가 38.7%였는데, Astra for Law는 54.0%를 통과했습니다. 판례 질문에서는 참조 판례를 24% 더 많이 찾았고, 같은 조건에서 관련 구절을 최대 54% 더 많이 끌어왔고요.
그런데 이 숫자를 다시 보셔야 합니다.
38.7%에서 54.0%면 큰 향상이 맞습니다. 그런데 뒤집으면 46%는 여전히 틀린다는 뜻입니다. 최고 모델에 미국 판례 거의 전부를 쥐여주고도 절반을 조금 넘겼을 뿐이에요.
기사들은 “24% 더 많이 찾았다”를 제목으로 뽑는데, 실무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절대값이죠. 법률 문서에서 절반쯤 틀린다는 건 그대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다른 지점입니다.
모델을 안 바꾸고 주변만 갖췄는데 38.7%에서 54.0%가 됐다는 것.
전에 에이전트 얘기를 하면서 “요즘 성능은 모델이 아니라 그 주변 껍데기가 결정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요. 이 사례가 딱 그겁니다. 같은 모델인데 무엇을 찾아볼 수 있게 해줬느냐로 15%p가 갈렸어요.
법률처럼 정확한 출처가 생명인 분야에서는 이게 더 분명해집니다. 모델이 기억에서 꺼낸 판례는 틀릴 수 있지만, 검색해서 가져온 판례는 확인이 되니까요.
그리고 이 시장이 지금 굉장히 붐빕니다.
Anthropic이 올해 5월에 법률용 서비스를 냈으니 석 달 빨랐고, 구글도 지난달 법률 전문가용 기업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대형 로펌이라는 한정된 고객을 두고 세 회사가 붙은 상황이죠.
OpenAI도 공을 들였습니다. 6월에 법률 소프트웨어 회사 창업자를 영입했고, 엔지니어를 직접 로펌에 보내 계약서 분석기나 인수합병 실사 도구를 같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빠진 게 꽤 있습니다.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API도 아직 안 열렸고, 지금은 선정된 로펌에만 제공됩니다.
성능 수치가 OpenAI 자체 측정입니다. 그것도 비공개 검증 세트로 잰 거라 제3자가 재현할 수 없습니다.
보안 인증도 아직입니다. 로펌 법무 담당자가 제일 먼저 물어볼 게 그건데, 9월 기준으로 관련 인증 자료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대형 로펌 대상 제한 공개” 단계로 보는 게 맞겠습니다. 국내에 들어오려면 한국 판례와 법령을 다루는 인덱스가 따로 필요할 테니 시간이 더 걸릴 거고요.
그래도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델을 새로 만드는 경쟁에서, 각 직업이 실제로 쓰는 자료와 도구에 얼마나 잘 연결되느냐의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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