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먼저 알아챈, CRISPR를 닮은 효소
송찬우 6분 분량
유전자 가위로 유명한 CRISPR (크리스퍼) 기술은 처음에 세균 DNA에서 똑같은 글자가 이상하게 되풀이되는 구간을 누군가 눈여겨본 데서 시작했습니다. 지난 9월 23일 Anthropic이 비슷한 장면을 공개했는데요. 이번에 반복을 먼저 알아챈 건 사람이 아니라 Claude였습니다.
찾은 건 ‘반복 배열’이 달린 효소입니다.
Anthropic은 올봄 생명과학 연구팀을 꾸렸습니다. 직접 실험할 실험실도 갖췄고요. 그리고 Claude에게 거대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새로운 ‘역전사효소’를 찾아오라고 맡겼어요. 역전사효소는 RNA를 거꾸로 DNA로 베껴 쓰는 효소입니다.
Claude가 찾아낸 건 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파지)에 들어 있는 새 효소 묶음입니다. 효소 하나, 짝을 이루는 유전자 하나, 그리고 그 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반복 서열이 한 세트예요. 이 반복 배열이 CRISPR와 닮았습니다. 연구팀은 여기에 ART(반복 배열이 딸린 역전사효소)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Claude 950개가 21시간 동안 일했습니다.
일은 역할을 나눠서 했습니다. 작업자 에이전트가 계획을 세워 분석하면, 감독이 검토하고 다음 과제를 엽니다. 기록 담당은 찾은 것을 공용 노트에 적고, 편집자가 보고서를 검토합니다. 이 모델들은 모두 Anthropic의 최상위 등급 모델인 Claude Mythos 5였습니다.
이렇게 Claude 약 950개가 21시간 남짓 토큰을 2억 개 넘게 썼습니다. 그동안 사람은 손대지 않았고요. 19억 개 단백질 묶음을 훑어 역전사효소 약 20만 개를 추렸고, 후보를 좁혀 보고서 19편을 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직접 읽기’였습니다.
그중 한 에이전트가 어떤 역전사효소 유전자 앞쪽의 DNA 2,900글자를 직접 불러와 읽었습니다. 작업 기록에 남긴 말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이 구간 굉장하다. 눈으로 봐도 반복 배열이 보인다. 100~180글자 간격을 두고 여러 번 되풀이된다. CRISPR 비슷한 반복 배열이다!”
실제로 그 구간에는 16글자짜리 반복이 14번 들어 있었습니다. 연구팀이 특히 강조하는 건 이 대목입니다. 처음 맡긴 과제에는 이런 반복을 찾으라는 말이 없었어요. 이상한 걸 알아보고 파고들 만하다고 판단한 건 Claude였습니다.

확인은 사람이 했습니다.
사람은 처음 과제를 쓰고, 작업 틀을 만들고, Claude가 낸 보고서를 검토했습니다. 후보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탈락했고요. 실험실 일도 전부 사람이 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결과는 이렇습니다. 실험해 보니 이런 반복 구간은 실제로 짧은 RNA 조각들로 만들어졌어요. 같은 효소 묶음을 가진 다른 파지의 공개 데이터를 보면, 세균을 감염시킨 지 15분 만에 반복 구간에서 나온 RNA가 파지 RNA의 최대 8%를 차지했습니다.
다만 이 효소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동료 평가를 거치기 전의 논문이기도 하고요. CRISPR 연구를 이끈 MIT의 펑 장(Feng Zhang)은 이 논문을 미리 검토하고 “더 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돌리면 못 찾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연구팀이 같은 탐색을 10번 더 돌렸는데, 대부분 이 효소 근처까지는 갔지만 앞쪽 DNA를 직접 읽은 에이전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복 배열은 한 번도 다시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따로 시험을 해 봤습니다. DNA를 직접 많이 읽을수록 반복을 알아채는 비율이 크게 올랐습니다. 반대로 DNA를 파일로 주고 분석 도구를 쓰게 하면 원본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때 시도의 39%는 DNA를 200글자 이상 이어서 읽지도 않았습니다.

Claude 안에서도 신호가 튀었습니다.
연구팀은 Claude가 그 DNA를 읽는 동안 모델 안쪽도 들여다봤습니다. 반복이 나올 때마다 튀어 오르는 신호가 두 개 있었어요. 반복 구간의 글자를 뒤섞으면 이 신호가 대부분 사라졌고요. DNA만 배운 전용 AI 모델들도 같은 자리에서 반응했습니다. 다만 연구팀은 이 신호가 DNA에만 반응하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사람은 다 못 읽는 데이터를 AI가 읽습니다.
DNA 데이터는 사람이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쌓이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AI가 그 더미를 대신 읽다가 “어?” 하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어?”를 진짜 발견으로 만드는 건 아직 사람이 검토하는 단계인 듯싶습니다.
https://www.anthropic.com/news/claude-discovers-novel-enzyme-system